잠긴 서랍 속에서 쓰는 재산몰수법
거리는 법을 재촉하고 국회는 서랍을 열지 않는다. 속도와 비밀은 원래 같이 가지 않는다.
잠긴 서랍 하나. 자카르타 국회의사당 어딘가에 그것이 있다. 안에는 법안 한 편이 들어 있다. 20년 가까이 아무도 열지 않던 서랍이다.
8월 27일, 자바 중부 파티(Pati) 출신 활동가 수프리요노, 별명 마스 보톡이 국회 앞에 섰다. 그가 이끈 것은 시민연합(AMPB)이다. 요구는 두 가지였다. 자산몰수법안(RUU Perampasan Aset)을 통과시켜라. 부패사범에게 사형을 선고할 수 있게 하라.1 국회 제3위원회(Komisi III) 위원장 하비부로크만은 그날 본회의에서 답을 내놨다. 늦어도 12월 15일까지 통과시키겠다는 서면 약속이었다. AMPB와는 별도의 합의서까지 주고받았다고 한다.2 20년 잠자던 법안이 하루 만에 넉 달짜리 시계를 달았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그 법이 정확히 무엇을 하는 법인지, 국회 밖에서 읽어 본 사람이 없다.
법안의 뿌리를 따라가 보면 사정이 좀 더 복잡하다. 2023년 5월, 조코 위도도 대통령이 대통령서한(Surpres)으로 이 법안을 국회에 냈다. 정부발의였다. 그런데 2019~2024대 국회는 임기 내내 이 서한을 열어 보지 않았다. 임기가 끝났다. 프라보워 정부가 들어선 뒤 이 법안은 국회발의로 성격이 바뀌었다. 발의 주체가 바뀌니 조문도 처음부터 다시 써야 했다. 실제로 국회가 조문 작업에 들어간 시점은 2026년 1월이다.3 셈을 해 보면 20년 묵은 법안의 실제 작업 기간은 8개월 남짓이다. 다른 우선순위 법안과 비교하면 이 속도가 두드러진다. 개인정보보호법은 초안이 나온 뒤 통과까지 6년 가까이 걸렸다.11 이번 법안은 그 초안 단계조차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그 8개월 동안 무엇을 썼는지는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공개된 적이 없다. 조문 초안도, 쟁점을 정리한 목록(DIM)도 마찬가지다. 국제투명성기구 인도네시아지부는 이 상황을 “어두운 방(ruang gelap)”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한다.3
서랍이 안 열린 것은 국회만의 사정이 아니다. 몰수한 자산을 누가 관리할 것인가라는 질문 하나만 놓고도 정부 안에서 의견이 갈린다. 검찰청 민사·국가행정 담당 차장(JAM-Datun)은 몰수 제도를 짚었다. 세 체계(rezim)로 나뉜다는 것이다.4 그 안에서 검찰이 맡아야 할 역할도 함께 강조했다고 한다. 몰수 권한을 새로 만드는 법이 그 권한을 누구 손에 쥐여 줄지조차 정리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관리기관이 검찰이면 기존 형사사법 절차 안에서 이의를 제기하면 된다. 관리기관이 새 독립기관이면 반환 신청 창구와 불복 절차를 처음부터 새로 만들어야 한다. 한국 기업이 현지 파트너의 자산과 얽혀 몰수 국면을 만난다면 이 차이는 크다. 어느 문을 두드려야 하는지가 달라진다는 뜻이다. 시위대가 요구하는 것은 “빨리”이고, 관료 조직이 다투는 것은 “누가”다. 이 둘은 같은 속도로 풀리지 않는다.
여기서 흔한 셈법이 하나 나온다. 시위대의 계산이다. 법을 통과시키고 사형까지 걸면 부패는 끝난다는 계산이다. 정말 그런가.
이 계산은 서로 다른 두 문제를 하나로 묶는다. 재산을 거두는 일과 목숨을 거두는 일은 다른 무게를 가진 결정이다. 흥미롭게도 이 지점을 정면으로 짚은 것은 시위대의 반대편이 아니라 시위대와 한 무대에 섰던 논객이다. 지식인 록키 게룽(Rocky Gerung)은 AMPB 측과의 방송 토론에 나섰다. 그는 몰수법 자체는 지지하지만 사형제를 몰수법에 끼워 넣는 데는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입증책임을 뒤집는 조항, 곧 재산을 가진 쪽이 그 재산의 합법적 취득을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조항도 있다. 그 작동 방식을 투명하게 설명하라고 요구했다.5 이 우려는 거리 밖에서도 나온다. 법률 해설들은 입증책임 전환이 변호사를 살 형편이 안 되는 보통 사람에게 더 위험하게 작동한다고 본다. 정작 힘 있는 쪽은 협상할 여지를 그대로 갖는다는 것이다.6 국회 안에서도 같은 걱정이 나온다. PDI-P 소속 국회의원 리에케 디아 피탈로카도 이 법을 정리했다고 전해진다. 몰수는 세게 하되 보호도 그만큼 세게 해야 한다는 취지다. 권한을 키우는 만큼 절차의 투명성과 사법 통제도 같이 커져야 한다는 뜻이다.7 국회의 답이 아직 서랍 속에 있는 것은 이 셈법이 보기보다 단순하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반대쪽 셈법도 만만치 않게 쉽다. 절차가 이렇게 허술한데 서두르지 말고 기다리자는 계산이다. 이것도 틀렸다.
20년을 기다린 결과는 이미 나와 있다. 그동안 부패로 쌓인 재산이 저절로 회수되지도, 저절로 사라지지도 않았다. 그냥 그 자리에 있었다. 기다림이 공짜였던 적은 없다. 국회 스스로도 이 지적에 방어적으로 반응한다. 하비부로크만은 국회가 법안을 거부한 적이 없고 오히려 속도를 올린 상태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전해진다. 그가 자동차 터보에 빗대 답했다는 영상이 여러 뉴스 채널에 올라왔다.2 속도를 올렸다는 주장과 서랍을 열었다는 사실은 다르다. 속도를 냈다는 주장과 내용을 보여줬다는 사실 사이에는 여전히 거리가 있다.
록키 게룽은 여기서 한발 더 나간다. 마스 보톡이 이끄는 이 운동의 열기가 다른 정치적 이해관계에 이용당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8 분노가 클수록 그 분노를 올라타려는 손도 많아진다는 뜻이다.
한국의 실무자에게는 이 몰수 방식 자체가 낯설다. 한국의 범죄수익은닉규제법이나 공무원범죄 몰수 특례법은 원칙이 다르다. 유죄 판결이 먼저 확정돼야 몰수 절차가 뒤따르는 구조다.9 인도네시아가 논의하는 몰수 방식은 이 순서를 건너뛴다. 유죄판결 없이도 몰수하는 방식, 이른바 non-conviction based forfeiture다. 어느 쪽이 옳은가를 이 칼럼이 정하지는 않는다. 다만 서랍 속의 것은 한국 실무자에게 낯선 도구라는 점을 미리 알아 둘 필요가 있다. 유죄 판결이 먼저 나오는 한국식 제도도 만능은 아니다. 형이 확정된 뒤에도 재산이 곧바로 돌아오지 않은 사건은 한국에도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추징금 2205억원은 1997년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2013년 국회가 별도의 특별법까지 만들었지만 완납으로 이어지지 않았다.12 순서를 갖췄다고 물건이 곧바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이 칼럼이 판단하지 않는 것도 분명히 해 둔다. 유죄판결 없는 몰수가 헌법에 맞는지는 이 칼럼의 몫이 아니다. 마스 보톡과 AMPB의 동기를 평가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이 칼럼이 다루는 것은 딱 하나다. 초안도 공개하지 않은 법을 넉 달 시한으로 밀어붙이겠다는 약속의 무게다.
몰수 대상 범죄는 지금 부패에 한정된다. 이를 조세·산림·광업 등 13개 범주로 넓히는 방안이 거론된다는 보도도 있다.10 이 역시 위원장의 발언으로 여러 매체가 전한 것이지, 공개된 조문으로 확인된 내용은 아니다. 발언 기준과 조문 기준을 섞으면 실무 판단을 그르친다.
그렇다면 자카르타에 법인을 둔 한국 기업은 지금 무엇을 봐야 하나. 본사에서 “우리 자산도 걸릴 수 있나”라는 질문이 오면, 대관 담당이 할 수 있는 가장 정직한 답은 이렇다. 조문이 아직 공개되지 않았으니 어떤 자산이 어떤 조건에서 걸리는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모른다는 것과 위험이 없다는 것은 다른 말이다. 모른다는 사실 자체가 지금 시점의 답이다.
하지 말아야 할 일도 있다. 아직 나오지도 않은 조문을 짐작해 합작 파트너나 거래 상대방과의 관계를 서둘러 다시 짜는 일이다. 본사 보고서에 “재산 몰수 리스크”라는 굵은 글씨를 올리는 일도 마찬가지다. 존재하지 않는 조문에 대비한 대책은 대책이 아니라 소음이다.
현지 합작 파트너 회사가 훗날 부패 수사 대상이 된다고 가정해 보자. 그 회사와 함께 소유한 공장 부지나 설비는 어떻게 되나. 이 질문에 지금 답할 수 있는 사람은 자카르타에도, 서울에도 없다. 선의의 제3자를 어떻게 정의하고 어떻게 보호할지, 그 조문 자체가 아직 쓰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답을 지어내는 일이 아니다. 계약서의 진술·보장(representations and warranties) 조항을 점검해 둘 때다. 파트너 실사 기록도 평소보다 한 번 더 들여다볼 때다. 조문이 나오면 그 기록이 방어의 재료가 된다.
지켜볼 신호는 넷이면 충분하다. 조문 초안과 쟁점목록(DIM)이 실제로 공개되는지. 몰수 자산을 관리하는 기관이 검찰(Kejaksaan)로 정해지는지, 아니면 새 독립기관이 생기는지. 이 답에 따라 반환 절차와 이의제기 창구가 통째로 달라진다. 몰수 대상 범죄 범주에 조세·산림·광업이 실제로 포함되는지. 그리고 12월 15일 시한이 실제로 지켜지는지도 지켜봐야 한다. 아니면 20년의 역사가 늘 그래 왔듯 또 한 번 미뤄질지도 모른다. 이 넷 중 하나라도 움직이면 그때 판단을 시작해도 늦지 않다.
거리의 요구는 크고 국회의 서랍은 여전히 작다. 그 격차가 좁혀지는 순간이 이 법의 진짜 시작이다. 서랍을 열지 않고 시계만 다는 나라는, 시계가 울려도 안에서 무엇이 나올지 스스로도 모른다.
- 2026-08-27 AMPB(수프리요노/마스 보톡)의 국회 앞 시위와 두 가지 요구(자산몰수법 통과·부패사범 사형제)는 tanganrakyat.id(2026-08-26)·kontan.co.id 등 복수 매체 보도 기준(검색 요약, 원문 미열람). 같은 날 GERAM 등 다른 연합이 별도로 토지·개각 등 10개 요구를 낸 것으로 보이나 이 칼럼은 AMPB의 두 요구만 다룬다. tanganrakyat.id
- 하비부로크만(Komisi III 위원장)의 12월 15일 통과 서면 약속(Surat Komitmen)과 AMPB와의 합의서 교환은 afu.id(2026-08-27 관련 기사 2건)에 더해, 서로 다른 발행사인 kompas.id(“RUU Perampasan Aset, Komitmen DPR dan Pemerintah di Tengah Demo 27 Agustus”)와 ANTARA 계열(“Rapat Paripurna DPR Tegaskan Komitmen RUU Perampasan Aset Rampung 2026”)이 각각 보도해 최소 세 개 발행사 기준으로 교차확인했다(검색 요약, 원문 미열람). kompas.id는 registry.json에 T3로 이미 등재된 매체다. “가스폴(터보)” 취지 발언은 유튜브 영상 제목(“DPR Bantah Tolak RUU Perampasan Aset, Habiburokhman: Kita Gaspol Pakai Turbo”)과 이를 다룬 뉴스 채널 업로드 기준이며, 이 세션에서는 영상 자막을 직접 열람하지 못했다(youtube.com EGRESS_BLOCKED, WebFetch 재확인). afu.id·gesuri.id·katakini.com·jendelahukum.com·tanganrakyat.id는 이번 근무 기준 registry.json 미등재 상태이며, source-librarian 평가를 별도로 요청한다. afu.id; afu.id; kompas.id; ANTARA
- 법안의 입법 연혁(2023-05 Surpres, 2019~2024대 국회 미처리, 국회발의 전환, 2026-01 조문 작업 개시)은 kompas.id “Momentum RUU Perampasan Aset” 등 복수 매체 검색 요약 기준(원문 미열람). 국제투명성기구 인도네시아지부의 “어두운 방(ruang gelap)” 표현은 이전 취재(Tracker 20260913-asset-forfeiture-bill verification.md, 2026-09-14)에서 이미 검색 요약으로 확인된 것을 그대로 인용했다. 이번 근무에서 원문을 다시 열람하지는 못했다. kompas.id
- 검찰청 민사·국가행정 담당 차장(JAM-Datun)의 “몰수 제도 3개 체계(rezim)” 및 검찰 역할 강조 발언은 story.kejaksaan.go.id(검찰청 자체 공지) 보도 기준(검색 요약, 원문 미열람). 검찰청(story.kejaksaan.go.id)
- 록키 게룽의 사형제 반대·입증책임 투명성 요구는 wartaekonomi.co.id(2026-09-03)·fajar.co.id(2026-09-04) 등 복수 매체가 방송 토론 발언으로 전한 내용이며, 편집국은 원 영상을 직접 열람하지 못했다(검색 요약 기준). 이는 록키 게룽 개인의 주장이며 편집국의 판단이 아니다. wartaekonomi.co.id; FAJAR
- 입증책임 전환이 자원이 부족한 시민에게 불리하게 작동할 수 있다는 지적은 jendelahukum.com “RUU Perampasan Aset 2026: Antara Pemberantasan Korupsi dan Risiko Abuse of Power” 등 법률 해설 기준(검색 요약, 원문 미열람). jendelahukum.com
- 리에케 디아 피탈로카(PDI-P 소속 국회의원)의 발언과 3가지 비판적 의견은 gesuri.id(2026)·katakini.com 등 복수 기사 기준(검색 요약, 원문 미열람). 국회의원 개인의 의견이며 국회 전체 또는 소속 정당의 공식 입장이 아니다. PDI-P가 현재 여당연합(KIM Plus)에 속하는지 여부는 이번 근무에서 확인하지 않았다. gesuri.id; katakini.com
- 록키 게룽의 ‘운동이 정치적 이해관계에 이용될 수 있다’는 경고는 fajar.co.id(2026-09-04) 보도 기준(검색 요약, 원문 미열람). 록키 게룽 개인의 주장이며 편집국의 판단이 아니다.
- 한국 범죄수익은닉규제법·공무원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의 유죄판결 전제 원칙은 일반적으로 공개된 법 해설 기준이며, 개별 조문 대조는 이번 근무에서 하지 않았다.
- 몰수 대상 13개 범죄 범주(부패 외 마약·조세·산림·광업 등) 논의는 Komisi III 위원장의 발언을 다수 매체가 보도한 것으로, Tracker 20260913-asset-forfeiture-bill verification.md(2026-09-14)에서 이미 “발언 기준, DPR 공식 문서 대조 불가”로 정리된 사실을 그대로 가져왔다. 조문으로 확정된 내용이 아니다.
- 개인정보보호법(UU Pelindungan Data Pribadi, UU 27/2022)은 2016년 초안이 나온 뒤 2019년 국회 우선순위 법안(Prolegnas Prioritas)으로 다뤄지기 시작해 2022년에야 통과됐다. 초안 공개 시점부터 따지면 6년 가까이 걸렸다. indonesiabaik.id 등 복수 자료(검색 요약 기준, 원문 미열람)를 종합한 수치이며, 소관 부처·정치적 맥락이 자산몰수법과 달라 단순 비교에는 한계가 있다. 그럼에도 초안조차 공개하지 않고 통과 시한부터 정한 이번 사례와는 대비된다. Prolegnas Prioritas 2026 소속 다른 법안들의 평균 심의 기간이나 동남아 다른 나라의 NCB 몰수법 입법 소요 기간은 이번 근무의 WebSearch로 특정 수치를 확인하지 못했다. 직접 비교 가능한 통계 자체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사실도 이례적이다. indonesiabaik.id
- 전두환 전 대통령의 추징금 2205억원은 1997년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2013년 국회가 별도의 특별법(공무원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 개정, 이른바 “전두환 추징법”)까지 만들었지만 완납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2023년 보도 기준으로도 미납액이 900억원대로 남아 있었다(서울신문 2013-09-11, 한국일보 2013-09-10, MBC뉴스 2023 보도 종합, 검색 요약 기준). 형이 확정됐다고 재산이 곧바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라는 사례로 인용했을 뿐, 인도네시아 논의와 제도적으로 동일하다는 뜻은 아니다. 한국일보; imnews.imbc.com(MBC)
칼럼은 필자의 의견이며 koreadesk의 편집 방침이나 법률 자문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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